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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2023, 대통령의 ‘황당한 말잔치’ 1년(2023.12.28) | 2023-12-28 11:22:52 | |
2023년이 저물어 간다. 돌아보면 깜짝 놀랄 만한 발언들이 난무한 해였다. 특히 집권 2년차 윤석열 대통령은 거침없는 역대급 발언들을 쏟아냈다. 그 말들에 정책이 따라 춤췄다. 세밑, 대통령의 말들을 결산해본다. 신년 벽두(1월18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에 참석한 윤 대통령은 자신을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으로 소개했다. ‘글로벌 CEO와의 오찬’ 자리였다. 이때만 해도 훈훈했다. 1호 영업사원의 1년 성과는? 대통령은 “순방이 곧 일자리 창출이자 민생이라고 믿는다”고 했지만, 고물가·가계부채·경기 부진 속에서 국민들은 “IMF 때만큼 어렵다”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제104주년 3·1절 기념사는 민심에 제대로 불을 질렀다. 윤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이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다”고 뜬금없이 면죄부를 주고, 지위를 격상시켰다. 오죽하면 일본 정부가 이를 호평했다. ‘굴종외교’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말폭탄 릴레이’는 계속됐다. “독일, 프랑스도 세계대전 후 화해했다. 한·일도 과거를 넘어야 한다”(3월21일 국무회의), “100년 전 일로 일본이 무조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은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4월23일 워싱턴포스트 인터뷰) 등 대통령의 발언들은 국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6월15일엔 수능을 5개월 앞두고 수험생들을 혼란으로 몰아넣은 ‘사교육 카르텔’과 ‘킬러문항 배제’ 관련 발언이 나왔다. 교육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대통령은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의 문제를 수능에서 출제하면 무조건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것 아닌가. 교육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한편(카르텔)이란 말인가”라며 ‘킬러문항’을 지양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2024학년도 수능은 역대급 불수능으로, “킬러문항을 없애지도, 사교육을 줄이지도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주일 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선 이른바 ‘R&D 카르텔’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나눠먹기식·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R&D 예산 4조6000억원이 삭감됐다. 그러나 정작 대통령이 비판했던 나눠먹기식·갈라먹기식 ‘R&D 카르텔’ 사례나 문제의 근원은 찾지도, 개선하지도 못했다. 군불을 지피던 ‘카르텔’ 용어는 “우린 반카르텔 정부”라는 대통령의 선언과 함께 아예 현 정부의 지향점으로 등극했다. 7월3일 ‘실세 차관’들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다. 그러나 국민들은 여태껏 카르텔의 실체, 반카르텔 정부의 정책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6~7월 정부·여당은 오염수 방류를 엄호하며 연일 ‘과학 대 괴담’ 프레임을 선전했다. 압도적인 부정 여론에 언급을 자제하던 윤 대통령은 7월27일 부산 자갈치시장을 찾아 “현명한 국민은 괴담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수산물 안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괴담’이라 직격했다. 오염수 방류 찬성 입장을 기정사실화한 장면이다. 그 이후는 모두가 아는 대로, 안 해도 될 걱정을 하고 안 써도 될 예산을 쓰게 됐다. 8월, 온 국민이 ‘국가망신’이라고 가슴 졸이며 지켜봤던 잼버리 폐막 후, 윤 대통령은 “잼버리를 무난하게 마무리함으로써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지켰다”고 자평했다. 준비 부족을 사과해야 마땅한데도, 상식과 동떨어진 후안무치 총평이었다. 이런 엉뚱한 상황 인식은 2030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 실패(11월29일)라는 ‘참사’로 이어졌다. 대통령은 즉각 “모든 것은 제 부족” “저희가 느꼈던 (각국) 입장에 관한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며 한껏 자세를 낮췄지만, 이 또한 재벌 총수들과 연출한 부산 ‘떡볶이 먹방’(12월6일)에 쏟아진 혹독한 비판으로 빛이 바랬다. 이 밖에도 “UAE의 적은 이란” “건폭” “공산전체주의” 등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통령의 말들은 끝도 없다. 이 중 8·15 광복절 경축사에 느닷없이 등장한 ‘공산전체주의’는 이념전쟁의 포문을 열었고,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추진 등으로 이어지며 우리 사회를 극단적 반목으로 몰아가고 있다. 대통령 한마디에 국정이 롤러코스터를 탄 1년이었다. 중요한 것은 뭔가 하나라도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졌느냐는 점이다. 성과는 거의 없었다. 대통령 말에 한껏 신경이 곤두섰던 국민들은 황당할 뿐이다. 내년엔 달라져야 한다. 안 그래도 힘든 국민들을 더 이상 거친 언사, 허망한 말들로 괴롭히지 말라.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 경향신문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