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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뜨거웠던 여름 ‘함께 배움, 함께 성장’ - 경향 후마니타스연구소(2022.9.15) | 2022-09-29 13:55:23 | |
교육 분야를 꽤 오래 취재해 왔다. 몇몇 정부를 거치는 동안 다양한 교육 주체들과 전문가, 정책담당자 등을 만나며 유·초등부터 고등교육까지 한국 교육을 접해 실상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해 왔다. 결론은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많은 이들에게 고통의 근원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과 에너지, 경제적 자원을 한껏 빨아들이면서도 결과는 보잘것없는, 고비용 저효율의 대표 사례이자 희망을 찾기 힘든 주제다. 그런데 지난여름, 전혀 다른 교육현장을 만났다. 6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가 진행한 글쓰기플러스 여름강좌에서다. 코로나 이후 본격적인 대면수업의 시작이었고, 일부 수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겸했다. 주 1회, 퇴근 이후의 저녁 두 시간. 피곤이 몰려올 텐데도, 또 대부분 강좌가 매시간 ‘빡센’ 숙제 제출을 요구하는데도, 교실의 열기는 뜨거웠다. 매시간 출석률은 최소 70%, 대체로 90% 안팎이었다. 하필 특정 요일의 강좌는 매번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비를 뚫고 신문사까지 오고 가는 길이 전쟁이었다. 난관 속에서도 전라도 목포에서 KTX를 타고 첫 주 3번이나 강의장을 오갔던 60대 수강생의 열의엔 강사도 감동했다. 모든 강좌는 끝났지만, 강의 시간 반짝이던 눈빛들, 때때로 웃음으로 들썩였던 분위기, 수업 이후 꼬리를 물던 진지한 질문들은 여운으로 남아 있다.
교실의 열기만큼 인상적이었던 점은 수강생 간, 수강생과 강사 사이의 ‘끈끈함’이었다.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고, 격려하고 지지하는 응원의 분위기가 가득했다. 학교에선 수업 중 엎드린 학생들, 질문이 없어진 교실이 문제라지만, 이곳에선 자발적인 참여의 기운이 물씬 느껴졌다. 특히 수강생들의 작품을 묶어 책으로 내는 시 쓰기, 여행 글쓰기 강좌는 ‘공동저자’라는 각별함 때문일까, 아니면 시와 여행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묶여서일까, 세대, 성별, 직업, 여건 등의 차이를 극복하고 모두 즐겁게 어울렸다. 어쩌면 민감할 수도 있는 작품 품평 시간엔 수강생들의 솔직한 의견과 강사의 첨삭이 공개적으로 오갔다. 이 같은 분위기 뒤엔 강사들의 훌륭한 조율과 세심한 마음씀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카톡방엔 ‘감사’라는 말이 넘쳤고, 주말농장 이야기,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로 따뜻했다. “우리 가을에 묵호 다시 갈래요?” 여행 글쓰기 강사가 운영하는 강원도 묵호의 서점에서 모였던 추억이 그립다며 한번 더 가자는 의기투합까지 이뤄졌다. 여러모로 내가 알던 교육, 고통의 근원인 대한민국 교육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경쟁은 없었다. 자발적인 협력 속에서 더 좋은 아이디어가 샘솟았고, 시너지 효과가 넘쳤다. 틀릴까, 실수할까 두려워하지 않았고, 궁금한 점, 그때그때의 생각을 스스럼없이 얘기했다. 각자의 장단점과 개성은 충돌하지 않고 어우러졌다. 서로의 장점이 모여 빚어내는 수강생들의 창의적, 주도적인 모습이 수업을 이끌었다. 강사와 수강생이 따로 없었다. 함께 배우며 성장한 시간이었다. 한마디로, 교육학이 얘기하는 모든 것이 녹아 있는 현장이었다. 아이든 어른이든 정서적인 안정이 확보되어야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배움이 일어난다. 책 제목처럼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격려와 배려, 응원의 분위기가 넘치는 안전한 공간이 확보될 때, 죽은 지식을 욱여넣는 것이 아닌, 개인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이끌어낼 수 있는 교육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선다. “이렇게 좋은 강좌를 마련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방에서도 들을 수 있게 꼭 온라인 강좌 계속해 주세요” 마지막 시간엔 이런 말들이 오갔다. 그간의 모든 고생이 녹고,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원래 배움의 본모습은 이렇게, 고통이 아닌 즐거움이다. 우리 교실을 이렇게 바꿀 순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열한 경쟁 대신 자발적인 협력과 질문이 넘치는 교실로, 경청과 존중, 지지와 응원이 있는 안전한 ‘배움의 공동체’로 말이다. 후마니타스연구소는 오는 20일부터 가을시민대학을 시작한다. 일본사와 와인 인문학, 이집트 고대문명, 명사들이 이끄는 두 차례의 북클럽을 준비했다. 이번엔 또 어떤 분들이 어떤 인연을 이어가고, 어떤 뿌듯함으로 가을학기를 마칠까. 신청 단계에서부터 지방 각지와 해외에서까지 참여하는 수강생들의 열기가 전해진다. 함께 배우고 자라는 즐거움이 확산되길 기대한다.(송현숙. 경향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2022.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