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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 홍범도 장군을 뵙고 왔습니다 | 2024-12-03 16:46:57 | |
홍범도 장군을 뵙고 왔다. 지난달 말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가 주최한 ‘홍범도 장군과 함께 걷다: 중앙아시아 역사 기행’은 항일 무장투쟁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노년의 발자취와 고려 동포들의 강제이주 현장을 따라 걸으며 배우고 느낀 여정이었다. 뜻밖이었다. 한 맺힌 슬픈 기행이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큰 힘을 얻고 돌아왔다. 우리 선조들의 뜨거운 삶의 의지와 피땀 어린 불굴의 노력, 조국 독립에의 염원 등을 확인한 기회였다. 1937년 스탈린은 당시 소련의 극동지방인 연해주 지역에 거주하던 고려인 동포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집단 이주시켰다. 만주사변의 후폭풍 속에 연해주의 한인들이 일본인과 구분이 안 돼 첩자로 활동할 수 있다는 기막힌 이유에서였다. 17만1700여명이 화물차에 실려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이송됐다. 30~40일간 6000~7000㎞를 이동하는 길, 열악한 환경에서 어떻게 생활했을지 그 비참함을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기차를 타던 중 1만여명이, 도착 직후 또 1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비극의 역사는 1990년대 소련과의 수교 이후에야 대중에 알려졌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땅에 옮겨진 고려인 동포들은 토굴을 파고 추위, 굶주림과 싸우며 억척스럽게 살아남았다. 강한 생존력과 성실함, 협동심, 교육열로 벼농사에서 큰 수확을 올리며 안정적인 공동체를 일궈 다른 민족들의 존경도 받았다. 비극의 역사를 긍지의 역사로 바꿔낸 것이다. 특히 ‘고려 동포들의 서울’이라 불리는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는 곳곳에 고려인 동포들의 자긍심이 묻어 있었다. 벼싹 모양의 크질오르다 상징탑도 그 한 축은 고려인들이 농사에 흘린 피땀의 결실이고, 동포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고려극장(현재는 알마티로 이동)은 ‘국립’으로 승격돼 고려인 동포들의 역사와 문화를 전하고 있다. 그 한가운데 ‘큰어른’ 홍범도 장군이 있었다. 크질오르다 시내에는 홍범도, 계봉우(이상 독립운동가), 김만삼, 채정학(이상 사회주의 노력영웅), 예브게니 하리토노비치 한(언론인) 등 고려인 동포들의 이름을 딴 거리가 5곳 있다. 이 중 1950년대에 명명된 홍범도 거리 설명엔 ‘홍범도는 대한민국의 애국지사이자 민족 영웅이며, 러시아 원동과 중국 동북지역에서 활동했던 항일무장투쟁의 전설적인 지도자’로 소개돼 민족을 뛰어넘어 모두의 추앙을 받고 있다. 이곳에서 홍 장군의 위상은 굳건했다. 답사단 대부분이 지난해 흉상 철거 논란 이후 홍범도 장군의 삶에 관심이 깊어져 직접 홍 장군과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느끼고 싶어 참가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몇년 전 대전현충원에 안장돼, 갈 때마다 홍 장군 묘역도 들렀다는 한 참가자는 “역사적인 현장에 직접 와 보니 영광스럽고. 한국에서와는 다른 감격을 느낀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모두들 저마다 홍 장군과 독립운동가들의 뜻을 기억하고 주변에 전하며 살겠다고 했다.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