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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총선, 국민 섬기겠다면 특권부터 내려놓으라(2023.11.29) | 2023-12-26 14:38:23 | |
“국회의원을 한번 해보면요, ‘정말 이렇게 좋은 자리가 세상에 어딨어’라는 게 느껴집니다. 정말로 의지가 강하고 지적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들도 국회 들어가는 순간 아 이게 아니구나, 이 특권이 너무 많고 너무 좋은 자리구나….” (진행자) “중독이 돼요?” “예.” 며칠 전 퇴근길 라디오에서 들은 이 말이 가슴에 팍 꽂혔다. 전 국회의원 김홍신 작가의 인터뷰였다. 마침 지난 주말 한 일간지의 “힘들어서 국회의원 못하겠단 말 나오면 정치개혁 된다”는 이원재 전 시대전환 공동대표의 인터뷰도 같은 맥락이었다. 대부분의 시민이 동의할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국회의원들의 특권은 국민 공분을 사는 주제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주요 공공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국회는 최근 10년간 압도적으로 낮은 신뢰도로 꼴찌를 면치 못했다. 국회의원 특권에 대한 여론의 비판 속 촛불혁명 직전 출범한 20대 국회에선 국회 차원의 특권 폐지 움직임도 활발했다. 2016년 출범 직후 의장(정세균)실 주도로 ‘국회의원특권내려놓기추진위원회’를 가동해 그해 가을 결과보고서를 내놨고, 2018년엔 ‘국회 운영제도개선소위’에서 의장이 제시한 안건을 상정하기도 했다. 2019년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심상정) 주최로 진보정당과 시민단체들이 함께 국회 특권 폐지와 혁신을 위한 방안들을 강구하고 국회 개혁 방안 토론회도 열었다. 뭐라도 바뀔 줄 알았다. 그러나 변죽만 울렸을 뿐,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한 성과로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특권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23년 기준 국회의원 연봉은 1억5426만원으로 1인당 국민총소득(GNI)의 3.65배다. 소득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입법활동비, 특수활동비가 비과세인 점을 감안하면 세후 연봉 차는 4~5배에 이를 수도 있다. 주요 국가들의 국회의원 연봉은 1인당 GNI의 1~2배 정도로 국민 평균 소득과 비슷하다. 자동차 유류비, 차량유지비, 문자발송비 등 의정활동 지원경비 1억1279만원, 개인 보좌진 9명의 급여 5억4000만원, 연 2회 해외시찰 비용 등도 해마다 지원된다. 공항 귀빈실과 비즈니스석을 이용하는 특권, 배우자의 직계존비속, 형제들도 이용할 수 있는 국회수련원 등 깨알 같은 특혜들도 넘친다. 주요 선진국들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특권들이다. 1987년 2명이던 국회 보좌진 수를 9명으로 늘리는 등 입법권을 가진 국회는 야금야금 각종 특권을 늘려왔다. 국회가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을 생각은 없는 듯하다. 세비 중 입법활동비와 특수활동비는 국회의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직무 관련 항목인 만큼 삭제하라는 권고도 받은 데다, 비과세여서 일반 국민과의 과세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난과 분노가 높았지만, 보수체계는 고쳐지지 않고 있다. 임기 도중 구속돼도 의원직을 사퇴하지 않는 이상 각종 수당이 지급되는 등 ‘무노동 유임금’ 또한 요지부동이다. 여야의 극한 대치 속에 사실상 마비 상태였던 21대 국회도 ‘기득권 지키기’에는 합심했다. 20대 국회 정의당이 주력했던 이른바 ‘셀프금지 3법’(세비와 국회운영비, 해외출장 심사, 징계 등을 셀프로 정하지 않겠다는 법) 추진은 21대에선 어디로 실종됐나. 고물가, 고금리, 경기부진의 한파 속, 국민들의 삶은 얼어붙고 있다. 가계빚은 계속 사상 최대를 경신 중이다. 특혜 속에 살아가는 국회의원들에게 편의점 식사도 버거운 청년들, 대중교통비 인상, 점심값 부담으로 도시락을 싸는 직장인들, 기름값, 난방비, 각종 세금 인상의 주름과 복지 서비스 축소가 관심일 리 없다. 도대체 국회의원을 왜 하겠다는 건가. 잿밥에만 눈이 어두운 공복, 머슴들이라면 하루빨리 해고하는 것이 맞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좋은 선례가 있다. 영국은 독립기구인 의회윤리청(IPSA)에서 의원들의 급여를 결정하고, 하원의원들의 비용 사용 내역을 두 달에 한 번씩 공개한다. 언제든 IPSA 홈페이지(www.theipsa.org.uk)를 통해 그 내역을 세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2009년 영국 하원의원들의 대규모 공금 유용 사실이 드러나면서 생긴 변화다. 당시 의원들은 250파운드 이하의 비용 청구에는 영수증 발급이 필요 없다는 규정을 악용해 각종 개인 비용을 신청했다. 장관 6명, 의원 46명이 사퇴했고, 현역 의원 142명이 2010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불과 10여년 전 영국에서 있었던 개혁이다. 우리도 내년 총선을 거치며 해보자. 국회를, 정치를 바꾸려면 구름 위에 살고 있는 ‘국민 대표들’을 국민 일상 속 땅으로 끌어 내리는 것이 급선무다.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 경향신문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