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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 ‘존재감 제로’ 국가교육위, 1년간 뭘 했나(2023.10.04) | 2023-12-26 14:36:54 | |
이럴 줄 알았다. 예상은 했지만 그보다 훨씬 나쁘다. 추석 연휴 직전이었던 지난달 27일은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출범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정작 국교위가 지난 1년 동안 뭘 했는지는커녕, 어떤 곳인지조차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당연히 별 기대도 없다. EBS에서 국교위 출범 1년을 맞아 방송 중인 <특별기획 백 년의 큰 약속, 교육의 길을 묻다>라는 뜬금없이 거창한 제목의 5부작 프로그램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지난해 9월 출범한 국교위는 교육계의 20여년 염원이 담긴 기구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중장기적 관점에서 안정적이고 일관된 교육정책을 추진해 보자는 뜻이 담겼다. 국교위 출범 뒤엔 교육정책이 정권에 따라 요동쳤다는 뿌리 깊은 비판이 깔려 있다. 2001년 보수성향 교원단체인 한국교총이 국교위를 처음 제안한 이래, 초정권적이고 독립적인 중장기 교육정책 수립기구의 필요성엔 보수, 진보 진영 할 것 없이 모두 동의해 왔다. 그러나 출범 1년 뒤의 현주소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국교위는 지난 1년간 17차례의 전체회의와 4번의 토론회 등을 개최했다. 이 중 조직 구성과 운영 안건을 빼고 정책에 관한 의미 있는 의결이 이뤄진 것은 단 한 번, 지난해 12월 ‘2022 개정 교육과정 심의·의결’ 안건이었다. 이 자리에선 교육부가 연구진 동의 없이 중·고교 역사과 교육과정에 추가한 ‘자유민주주의’와 ‘성평등·성소수자’ 표현 삭제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면서, 반대 위원 3명이 퇴장한 가운데 표 대결로 의결이 이뤄졌다. 법률에 명시된 폭넓은 ‘사회적 합의’는커녕, 내부에서조차 졸속 심의로 파행에 이른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이 같은 사태는 박근혜 정부 당시 한국사 국정교과서 편찬에 깊이 관여한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을 위시해 이념적 성향이 강한 인사들이 곳곳에 포진한 위원 선정 과정에서부터 이미 예상됐다. 오죽하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합의정신에 대한 우려 섞인 질문이 쏟아졌을까? 3명의 상임위원은 “갈등 해소 방안을 토론해 공통분모를 찾겠다” “적절한 수준에서의 통합적 합의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설명하며 양보와 합의를 약속했지만, 결국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출범 1년이 넘도록 정원 21명 중 교원단체 추천 몫 1명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위원회 미완성 구조도 갈등 상황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갈등의 연속, 여야 정쟁의 축소판…. 국교위가 왜 있어야 하는지 존재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교육망국론이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한국 사회의 희망이었던 교육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고, 오히려 사회 동력을 갉아먹는다는 지탄을 받고 있다. 교육이 개인은 물론, 가정과 전체 사회에 고통과 절망의 늪이 되고 있다. 곳곳에서 절망적인 교육현장에 대한 아우성, 교육개혁 요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런 목소리들의 구심점이 되어 달라고 만든 기구가 국교위다. 교육의 성패는 사회 전체의 성패, 미래의 성패와 직결된다. 많은 유럽 선진국에서 모든 구성원들의 삶이 걸려 있는 교육문제만큼은 합의제 기구를 두는 이유다. 세계 각국은 더 행복한 개인과 사회를 위한 미래형 교육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유·초·중등 교육 등 학령기뿐 아니라 고등교육, 평생학습 등으로도 관심을 넓혀 가고 있다. 현재 국교위의 가장 큰 중심사업은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을 수립하는 일이다. 내년 9월까지 시안을 보고하고, 이를 바탕으로 2025년까지 최종안을 정해, 2026년부터 10년간 교육정책의 근간으로 삼는다는 일정이다. 우리 사회엔 교육 과제가 산적해 있다. 가깝게는 당장 2025학년도부터 전면 시행될 고교학점제와 그 후속 방안들, 의대 쏠림 과열 양상과 교권 문제, 최근 문해력 저하 우려로 인한 주요국들의 디지털 기기 사용 제한 움직임 등이 주목된다. 보다 장기적으론 미래형 입시 방안과 고등교육, 공교육 정상화 방안, 교육과 돌봄, 평생학습 시대의 교육정책 재편 등이 논의되어야 한다. 하나하나가 수십, 수백 번의 토론을 거쳐야 가닥이 잡힐 난제들이다. 중장기 계획이라면 주요 교육 의제가 망라돼 하나씩 쟁점을 정리하며 사회적 총의를 모아야 하는데, 굵직한 현안 중 아무것도 테이블에 올라온 것이 없다. 도대체 뭘 하고 있나. 국교위는 너무나 고요하다. 세계는 뛰고 있는데, 국교위가 중장기 계획을 수립한다는 명분 뒤에 숨어 고담준론만 하며 허송세월하는 것은 아닌지 가슴이 답답하다. 10년 장기 교육계획마저 망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없다.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 경향신문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