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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홍보부족이라고? 시민들은 바보가 아니다(2023.03.23) | 2023-05-18 11:32:59 | |
“장난 지금 나랑 하냐.” 최근 ‘주 69시간 노동’을 둘러싼 논란을 보며 오래전의 이 유행어가 떠올랐다. 정부가 운을 떼고, 바람몰이를 하고 위원회를 조직해 안을 만들어 입법예고까지 한 정책이 뒤집힐 판이다. 정부안의 공식 명칭은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일주일 120시간 노동’을 거론한 이후, 취임 직후인 지난해 6월부터 착수해 현 정부가 야심차게 밀고 있는 소위 ‘노동개혁 1호 법안’이다. 지난해 말 이미 ‘주 69시간’ 안이 나왔고, 노동계 의견 수렴이 없었다는 비판에도 밀어붙여 지난 6일 공식 발표됐다. 그 후엔 모두가 아는 대로 난리통이다. 역풍에 놀란 윤 대통령은 발표 8일 만에 재검토를 지시했다.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고도 했고, 노동 약자의 여론을 더 청취해 방향을 잡겠다고 한다. 개편안은 다음달 17일까지 40일간 입법예고를 거쳐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지만, 앞으로의 향방은 알 수 없다. 근로기준법 개정안 통과의 키는 여소야대 국회가 잡고 있다. 정부안의 핵심은 현재 주 단위, 최대 52시간(법정 40시간, 연장 12시간)으로 제한한 노동시간을 노사 합의에 따라 월·분기·연 단위로도 운용할 수 있도록 하고, 1주일에 69시간까지(6일 기준) 허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 69시간제’로 통칭된다. 정부는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도입하고, 연차휴가까지 더하면 ‘제주 한달 살기’도 가능해진다고 홍보한다.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자는 얘기다. 정부가 강조하는 정책 취지는 ‘근로자의 선택권, 건강권, 휴식권 보장’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사의 시간주권을 돌려주는 역사적인 진일보”라 평가했다. 취지대로라면 노동자들이 당연히 환영할 텐데, 반대로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내용부터 추진 과정 모두가 문제이지만, 시민들이 가장 어이없어하는 지점은 “취지가 정확히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설명 부족” “오해” “가짜뉴스”를 운운하는 정부·여당의 태도다. “근로자들에게 혜택을 주려고 하는 정책이었는데 ‘주 최대 69시간’이라는 극단적이고 별로 일어날 수 없는 프레임이 씌워져 진의가 잘 전달이 안 됐다”(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 “가짜뉴스와 세대 간 소통 부족 등으로 근로시간제도 개편이 장시간 근로를 유발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임이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민의힘 간사). 오해라고? 천만에, 그 반대다. 시민들은 일터에서의 오랜 경험으로 현실과 규정의 괴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정부안의 취지를 정확히 꿰뚫고 있고, 현실에선 어떻게 구현될지도 직감한다. 노동자들은 이번 개편의 본질이 노동자의 선택권·건강권 보장이 아니라, 사용자가 원할 때 노동자에게 몰아서 일을 시킬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개편안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그 이상 근무하면 건강에 치명적이라고 경고한 주 55시간을 훌쩍 넘어, 산업재해 관련법상 과로사 인정 기준인 ‘4주간 1주 평균 64시간 노동’까지도 허용한다. “그렇게 일하면 죽는다”는 기준선을 노동시간 상한으로 잡고서 어떻게 건강권, 휴게권을 보호하겠다는 궤변을 늘어놓을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백번 양보해 선의의 취지였다고 치자. 취지대로 정책을 구현할 준비는 얼마큼이나 됐는가. 정부안대로 근로기준법이 통과될 경우, 일을 몰아 시킬 수 있는 사측의 권리는 법안에 깨알같이 명시돼 있는 반면, 노동자 보호 대책은 ‘주 69시간을 일할 때 11시간의 연속 휴식이 있어야 한다’뿐이다. 지난 6일 정부안 발표에 대한 언론사들의 우려와 비판 기사에 노동부는 설명자료를 내 “과로사회 회귀 등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정작 노동자 보호 대책 부분엔 “연구 착수” “마련할 것” “계획” “논의 예정”이라는 말들만 넘치고, “적극적인 감독행정으로 제도가 악용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안 지켜도 그만인 다짐뿐이다. 이런 정부를, 대책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이번 노동시간 개편안은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이후 70년간 유지된 주 단위 노동시간을 월, 분기, 연 단위로 풀어 노동형태의 근간을 흔드는 대대적인 변화다. MZ세대뿐 아니라 모든 직종, 모든 세대 남녀 노동자와 그 가족, 사회 전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런 중요한 정책에 하루가 멀다 하고 정부·여당의 입장이 이랬다저랬다 한다. 대통령과 대통령실, 주무부처 장관의 말이 다르다. 준비가 안 됐으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 국정은 장난이 아니다.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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