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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무책임·무공감 정부, 민심에선 이미 탄핵됐다(2023.02.23) | 2023-02-23 12:49:17 | |
보름 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이태원 참사 대응 책임을 물은 것이다. 대통령실은 탄핵안 가결 20여분 만에 “의회주의 포기” “의정사에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는 전광석화 입장문을 내놨다. ‘초유의 국무위원 탄핵소추’ 기사가 언론마다 대서특필됐다. 논란이 커질 사안이면 진작 자진사퇴하거나 경질했기 때문에 예전엔 이 같은 ‘사태’로까지 번지진 않았다. 사퇴가 마땅하다는 민심을 정면으로 거슬러, 탄핵소추안이 압도적으로 통과될 때까지 버틴 상황 자체가 ‘초유의 사태’라 할 만하다. 재난·안전 주무장관인 이상민 장관의 무책임은 상식을 초월한다. 위기관리 매뉴얼 자체를 제대로 몰랐으며 재난 대응 수장들에게 연락하지도, 중대본을 빠르게 구성하지도 않았다. 위기관리 컨트롤타워는 없었다. 참사 직후 지난해 10월30일 브리핑에선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실언으로 국민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사퇴 요구는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동문서답으로 일축했다. “유족끼리 만나게 해달라”는 유족 요구엔 명단이 없다더니, 서울시에서 3차례 명단을 전달받은 사실이 밝혀지며 위증 논란까지 일었다. 실언, 발뺌, 무시, 외면, 거짓말…. 유족은 물론, 시민들의 마음까지 후벼파는 이 장관의 언행 자체가 참사였다. 이 장관을 문책해야 한다는 설문 답변은 70%까지 달했다. 서울광장에선 이태원 참사 유족과 서울시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유족들은 참사 100일째인 지난 4일 광화문광장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경찰이 막아서며 서울도서관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시는 분향소 자진철거 계고장을 2차례 보냈고, 철거기한을 지난 15일까지로 명시했다. 분향소가 강제철거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유족들이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고 있다. 그사이 서울시는 녹사평역 지하 4층을 대안으로 제안했다. “지하 4층에 분향소를 차리라니…. 숨도 못 쉬고 또 죽으라는 건가.” 유족들의 절규 위로 오세훈 시장이 기자회견에서 흘렸던 눈물이 겹쳐진다. 오 시장은 참사 사흘 후 “서울특별시장으로서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 “유가족과 부상자, 이번 사고로 슬픔을 느끼고 계신 모든 시민분들이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때까지 모든 행정력을 투입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아직 일상을 회복하지 못했는데, 서울시는 서둘러 이들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 버리려는 듯하다. 이 장관 탄핵안은 헌법재판관 9명 중 7명 이상이 출석해 6명 이상 찬성하면 탄핵 인용, 4표 이상 반대면 기각, 탄핵소추 절차에 하자가 있다는 판단이 5명 이상일 경우는 각하된다. 법률상으로만 보면 탄핵 인용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법적인 결론과는 상관없이 이 장관은, 참사 관련 공직자들은 이미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탄핵됐다. 참사 직후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해 상주도, 위패도, 영정도 없는 분향소에 엿새간 ‘개근’하고선 끝난 대통령의 일방적인 애도, 불과 몇달 만에 공식 석상의 눈물쇼를 뒤집으며 유족들과 싸우는 오 시장의 낯두꺼움, 궤변과 책임 회피로 일관한 이 장관의 오만함에 민심은 닫히고 있다. 정부·여당의 방관 속에 박희영 용산구청장마저 옥중에서 버티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와 ‘성역 없는 철저한 책임규명’, ‘피해자 참여가 보장된 진상 및 책임 규명’, ‘참사 피해자의 소통 보장 및 인도적 지원’, ‘온전한 희생자 기억과 추모를 위한 적극 조치’, ‘2차 가해 방지 입장 표명과 대책 마련’. 연락처도 못 받고 겨우겨우 수소문해 첫 모임을 가진 유족 30여명이 지난해 11월22일 기자회견을 열며 요구한 6개 사항이다. 이게 무리한 요구인가. 석 달여가 지났지만 너무나 당연한 이들 요구 중 어느 하나 해결된 것이 없다. 그런데도 이젠 그만하라고 한다. 유가족협의회는 110명의 희생자 가족 200여명으로 늘었다. 대통령실에 질문을 돌려드린다. 진정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은 무엇인가. 서울 한복판에서 젊은이 159명이 축제구경을 나왔다가 목숨을 잃었는데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 참사 넉 달이 지나도록 유족들이 원하는 방식의 추모와 애도조차 허락하지 않아 심리적 참사가 계속되고 있는 현실 아닐까. 위로와 치유가 필요한 유족들을 투사로 만들고 있는 ‘현 정부의 무책임, 무공감이야말로 부끄러운 역사’라고 이 지면에 기록한다.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