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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칼럼]“여러분, 새해엔 알아서 버티셔야 합니다”(2023.1.5) | 2023-01-05 15:51:16 | |
2023년 새해에, 2000년 이후 강산이 두 번 바뀐 신년 벽두에 이런 걱정을 하게 될 줄, 이런 제목의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한층 팍팍해진 일상을 이어가는 일 자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절감하는 하루하루다. 생각이 뻗어가는 대로 열거해 본다. 새해엔 최악의 고용한파가 몰아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지난 연말 공공기관을 혁신하겠다며 2025년까지 공공기관 정원을 1만2000명 이상 줄이는 감축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공공부문을 효율화하고 민간 일자리를 늘리겠다지만 글쎄다. 경기가 안 좋은데 기업 규제를 푼다고 일자리가 늘어날까? 어림도 없다. 과거 사례를 돌아봐도, 현 상황을 봐서도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올해 취업자 수 증가 폭은 지난해 81만명에서 10만명으로 90% 급감이 예상된다. 대책은? 아직이다. 관계부처 합동 일자리TF가 이달 중 내놓겠다는 고용정책을 두고 볼 일이다. 구조조정 칼바람에서 살아남더라도, 취업에 간신히 성공하더라도 한국 사회는 다시 과로사회로 접어들 조짐이다. 정부는 주 52시간의 노동시간을 최대 69시간으로 늘리는 ‘노동개혁’ 방침을 내놨다. 2016년 게임업체에서 개발자로 일하던 20대 청년의 과로사는, “일하다 죽는 야만사회를 이젠 끝내야 한다”는 공분 속에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가져왔다. 그러나 후보 시절 “주 120시간 노동”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던 윤석열 대통령은 “주 52시간제 ‘완화’는 노동시간 선택권 확대”라는 궤변으로, 잉크가 마르지도 않은 정책을 원점 이전으로 되돌리고 있다.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그렇게 일하다간 병들거나 과로사 위험에 노출될 뿐이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2023년에 이 말을 해야 하는 현실이 참담하다. 새해엔 버스·지하철·택시 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이 줄줄이 예고돼 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외환위기 이후 2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터다. 코로나19 이후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와 자영업자 대출 증가분 560조원은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이다. 정부 대책이 기업 규제 완화에 집중된 사이 시민들은 보호막도 없이 고물가·고금리의 파고에 맨몸으로 맞서야 할 상황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부동산 정책의 초점은 다주택자 규제 완화에 맞춰져 있다. 집을 살 때도, 팔 때도 세금을 깎아주고, 대출한도도 늘려준다. 추가 규제 완화까지 예고돼 있다. 윤 대통령은 ‘제1차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다주택자에 대한 과세를 경감해 시장에서 열악한 지위에 있는 임차인들이 저가에 임차를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드리려고 한다”며 다주택자 과세 경감이 서민 대책이라는 취지의 상식 밖 주장을 강변했다. 그래놓고 정작 서민들의 버팀목인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단번에 5조6864억원을 깎았다. 수익이 안 된다는 이유로 전공 선택과 채용을 꺼려 ‘소아과 의사 기근 비상’이라는 기사가 대서특필되고 있다. 저출생 시대에 한심한 노릇이다. 3년간 1만2000명의 공공부문 고용 축소로 아낄 수 있는 비용은 최대 연 7600억원이라고 한다. 법인세·종부세 등 부자감세로 줄어드는 5년간 20조원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대통령 본인이 “국민들이 숨이 넘어가는 상황”(2022년 6월20일 도어스테핑)이라고 진단할 만큼, 경제와 민생의 위기 상황에서 감행한 청와대 이전 비용은 또 어떤가. 496억원이면 충분하다던 주장과는 달리, 연쇄비용까지 더하면 최대 1조7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까지 나온다. 국민들은 숨이 넘어가는데, 정부는 솔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새천년에는 더불어 잘사는 중산층 중심의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일등만을 위한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약한 사람과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제대로 갖추어야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 일류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습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새천년 신년사는 평화와 인권, 정의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국민적 화합, 남북관계를 강조했다. 2023년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사에 ‘통합’과 ‘협치’는 없었다. 대신 노동·교육·연금의 3대 개혁 추진 방침과 함께, 귀족노조와 기득권 비판, 노사 법치주의가 거듭 등장했다.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다. 눈물이 난다. 새해, 모든 책임을 시민 각자에게, 기득권이라 낙인찍힌 노동자들에게 지우려는 으름장에 맞서 어떻게든 잘 버텨내시라.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똑똑히 기억하면서. (송현숙 후마니타스 연구소장·논설위원) |